해리 김 시장(81·사진)이 하와이 한인 이민자의 후손으로 빅 아일랜드 수장에 오른 뒤 총 3번의 임기를 마치고 시장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김 시장은 노심끝에 이번에도 빅 아일랜드 시장직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예비선거에서 탈락하며 본선 진출이 좌절된 바 있다.
그의 스토리는 말그대로 파란만장했다. 사탕수수 한인 이민자의 아홉 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나 빅 아일랜드 시장직에 오르기까지 숱한 이야기가 있다.
특히 1983년 빅 아일랜드의 화산폭발 당시 민방위본부 수장으로 최전방에서 진두지휘하며 주민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그의 모습은 모든 하와이 주민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이같은 공로로 그는 2000년 정치 초년생으로 빅 아일랜드 시장직에 당선되었다. 첫 시장 선거에서 그는 1인당 10달러 이상의 후원금은 받지 않겠다고 선포했으며 실제 상대 후보가 쓴 선거자금의 겨우 6%인 1만7천여 달러를 쓰고도 그것도 압도적인 표차로 시장직에 당선되었다.
그는 2008년 한국의 미국 무비자 입국 허용을 앞두고 한국에 방문해 한국 언론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해리 김 시장은 늘 자신이 한국인 이민자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강인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그중 하나는 자신이 7살 때 아픈 누이를 어머니가 등에 업고 6마일을 걸어 병원에 도착했지만, 이미 누이가 사망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누이를 업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아픈 기억을 직접 털어 놓기도 했다.
정직한 정치인 이미지로 빅 아일랜드 주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온 해기 김 시장은 2000년부터 3번의 시장직을 수행하면서 안정된 시정운영을 이끌었지만, 심장마비 증상 등 건강상의 문제가 늘 그를 괴롭혀 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고령의 나이와 그의 건강 문제가 발목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 때 주지사 선거 출마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결국 빅 아일랜드 시정에 좀 더 집중하기로 하면서 주지사직 출마를 포기했었다.
오랜 행정직 업무를 마치고 은퇴하는 해리 김 시장은 자신에 대해 “항상 운이 좋은 사람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알로하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1개의 댓글
같은 한인 이민자로서 늘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마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