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상환연기 문의만 하루 8000건”
실업률 40% 땐 2920만 가구 위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연 0~0.25%)를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낮췄지만 부동산 시장의 열기는 차갑게 식었다. 매달 이자나 임대료를 내는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실직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텍사스에서 주택담보대출 등을 취급하는 업체인 칼리버 홈론스의 산지브 다스 최고경영자(CEO)는 1일 CNBC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지난달 29일 하루에만 대출 원리금 상환을 연기하는 것과 관련해 8000건의 고객 문의가 있었다. 상황이 엄청나게 급변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출 원리금을 갚아야 하는 날은 매달 1일에 몰리는데 이날을 앞두고 고객 문의가 폭증했다는 얘기다.
다스는 “실업난이 더 심해진다면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보다 더 심각한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브프라임모기지의 부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그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2009년에는 3개월 이상 연체율이 9%였다. (코로나19로) 이 수치가 40~50%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20만 명을 넘어섰다. 경제 전반의 ‘셧다운(폐쇄)’은 장기화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문제가 없던 가구도 수입이 끊기자 당장 대출 이자나 임대료를 내지 못할 처지가 되고 있다.
워싱턴에 있는 어번연구소는 지난달 27일 연구보고서에서 실업률이 40%까지 치솟는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2920만 가구가 현재 사는 집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 가구가 사는 집을 유지하려면 6개월간 1620억 달러(약 200조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어번연구소는 “정부가 2조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놨지만 시민들이 사는 집을 장기간 유지하는 데는 부족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선 약 9200만 가구가 주택대출 이자를 내거나 남의 집에 살면서 임대료를 물고 있다. 대출 없이 집을 소유한 가구는 3000만 가구에 그친다.
영국·호주·홍콩 등 그동안 집값 상승세가 가팔랐던 지역에선 하락세로 돌아서는 모습이다. 호주 공영방송 ABC는 “코로나19로 시드니·멜버른 지역의 주택 가격이 10~20% 하락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도 경고음이 울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미국·홍콩 등에서 코로나19로 많은 상점과 음식점이 문을 닫았다. 그러자 임대료를 내기 어려운 세입자와 건물주간 충돌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동산 가격 하락은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부동산 펀드나 리츠(부동산투자회사) 같은 금융상품을 통해서다. 소액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대형 부동산에 투자한 뒤 수익금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주는 상품이다. 만일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거나 투자 대상을 잘못 고르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영국에서 250억 달러의 부동산 펀드가 거래 정지됐다. 코로나19로 인해 부동산 가치 평가와 수익금 책정이 어려워졌다는 이유에서다. 모건스탠리캐피탈 인터내셔널(MSCI)의 미국 부동산 리츠 지수는 올해 들어 지난 1일까지 33% 내렸다. 같은 기간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 하락폭(26.4%)보다 컸다.